-
반응형
슬픔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거나, 노여움 때문에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기쁘니까 웃고 슬프니까 운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화가 나기 때문에 얼굴이 붉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와 전혀 반대의 주장을 하는 자가 있다. 제임스에 따르면 신체의 생리적인 변화의 결과로 정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정동은 정서와 비슷하게 쓰이지만 정서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것과 같은 조용한 감정이 아니라 내장이나 혈관에 일련의 변화를 일으키는 감정을 말한다. 제임스는 그의 저서에서 '우리는 울어서 슬프고 때려서 화가 나며, 떨어서 무서운 것이지 슬퍼서 울고 화나서 때리고 무서워서 떠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정동에 대한 제임스의 이러한 생각은 거의 같은 시기에 덴마크의 생리학자 랑게가 비슷한 학설을 발표해서 둘의 이름을 합쳐 '제임스 랑게 이론'이라고 불린다. 예를 들어 '슬프다'는 감정이 일어나는 과정을 이들의 관점으로 살펴보자. 우선 눈물이 나오는 신체적인 변화가 나타나면 그 변화가 뇌에 전달되어 뇌가 슬프다는 감정을 나타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있거나 혹은 좋은 일이 있는데 괜히 눈물이 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본래 아무 일도 없었는데 우연히 눈물이 나는 바람에 슬퍼졌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와 반대되는 이론으로 '캐넌-버드 설'이 있다. 이것은 대뇌 아랫부분에 있는 시상하부에서 감정이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시상하부에서 '슬프다'는 감정이 일어나면 그것을 대뇌가 포착하여 '울어라! 울어라! 하고 신체의 해당 기관에 명령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제임스 랑게 이론이 우리의 정서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적합한 학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후 정서에 대한 연구를 자극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제임스의 생각을 좀 더 발전한 이론으로 '톰킨스가설'이 나왔다. 제임스는 신체의 생리적인 변화가 정동을 일으킨다고 생각했지만 톰킨스는 생리적 변화가 아닌 '얼굴 표정의 패턴'이 정서를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톰킨스는 웃는 얼굴의 표정은 즐거운 기분을, 불쾌한 얼굴의 표정은 불쾌한 기분을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치아만으로 펜을 물었던 사람은 무의식중에 즐거운 기분이 되고, 만화를 평가할 때도 훨씬 재미있게 느꼈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효과는 '나는 지금 웃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 효과가 사라져 버린다는 점이다. 실제로 어느 정도 즐거운 기분이 되었더라도 그 이유를 “일부러 웃는 얼굴을 지었으니까!" 하고 해석해 버린다면 즐거움이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상생활 속에서 충동이 일어나는 구조는 좀 더 복잡하다. 또한 엄청난 슬픔 속에 잠겨있는데 얼굴 표정을 바꾼다고 해서 금방 즐거워지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톰킨스의 가설을 일상생활에 적용해 본다면 침체한 기분을 회복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결혼 상대 혹은 자기 부모나 귀여운 자식까지도 해치는 끔찍한 사건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잔악한 사건은 도대체 어떤 심리가 작용하여 발생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아내에게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자. 아내를 매우 사랑하고 있는데 배신을 당했다면 견디기가 그만큼 고통스러울 것이다. 만약 아내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았거나 사랑이 식어가고 있었다면 아내를 해칠 만큼의 미운 감정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랑과 미움은 마치 자석의 두 극과 비슷하다. 전자석의 경우 S극과 N극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두 개의 극이 서로 바뀔 수 있다. 그런데 자석의 극과 극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은 우선 이 금속이 자기력을 갖고 있어야 가능하다. 자기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S극이나 N극으로 바뀔 것도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뜨겁게 사랑했기 때문에 그 사랑이 미움으로 바뀔 수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가해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는 것은 그야말로 순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과 이야기하는 도중 갑작스럽게 증오심이 폭발하거나 홀로 상대방에 대해 이것저것을 생각하던 중 갑자기 미운 생각이 드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처럼 사랑과 미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갑자기 서로 뒤바뀌어 나타나는 심리를 심리학에서는 '카타스트로피 이론'이라고 한다. 카타스트로피라는 말의 어원은 그리스어로서 갑자기 나타나는 커다란 변화를 의미하며 전쟁이나 파국, 재해, 종말과 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것은 프랑스의 수학자였던 르네 톰에 의해서 연구된 것으로 안정과 불안정이라는 두 가지 상태가 급격하게 변이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마음에는 항상 모순된 감정이 있다. 공포라는 감정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공포영화를 보러 간다. 이와 같은 상반된 감정 가운데 불쾌한 감정은 평소 마음속 깊은 곳에 억압되어 있다가 흥분 상태에 이르면 갑자기 의식의 표면으로 튀어나오는 경향이 있다. 의욕적으로 일이나 사업에 몰두할 때는 늠름하고 발랄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그것이 실패로 끝나는 순간'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다' 혹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자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실패라는 사태가 일종의 흥분 상태로 변화되어 불쾌한 상태를 선택하게 만든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무거운 짐, 즉 책임을 혼자 진다거나 '행복한 것이 도리어 겁이 난다'는 생각에서 갑자기 사랑하는 애인 곁을 떠나는 것도 '카타스트로피 이론'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 주로 여성에게서 많이 볼 수 있는데 비극의 주인공들에게서 볼 수 있는 자의식과 같은 것이다.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불행 쪽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처럼 모순된 마음이 인간으로 하여금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만든다.
반응형'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격과 환경의 관계 (0) 2022.11.30 행동에서 나타나는 성격 (0) 2022.11.29 심리학 감정의 연구 (0) 2022.11.27 셀프 핸디캡으로 보는 인간의 욕구 (0) 2022.11.26 욕구에 따른 사람 심리 (0) 2022.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