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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없는 사회는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게 유지될지도 모른다. 모든 비극과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인간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영화 《이퀼리브리엄》에 보면 3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더 이상의 전쟁을 막기 위하여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약물을 강제적으로 투여하는 내용이 나온다. '프로 지움'이라는 이 약을 먹은 사람들은 사랑과 슬픔, 분노, 등의 감정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영화 가운데에는 감정을 느끼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약을 거부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영화는 고통과 슬픔 등의 감정을 느끼지 않는 대신 사랑과 행복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부정적인 감정을 겪는 고달픔을 감수하고라도 사랑과 행복의 감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가를 관객에게 묻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프로 지움을 복용하는 사람들과 비슷하게 '감정표현 불능증'이라는 증세를 실제로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감정을 느낄 수도, 묘사할 수도 없으며 다른 사람들의 감정 또한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오늘날 독일 사람들의 10~14% 정도가 이런 증세를 보인다고 하는데 문제는 이들이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모르고 있으며, 자신에게 이상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데 있다. 이처럼 인간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감정의 구조와 행동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감정 심리학의 분야이다. 그동안의 심리학이 주로 행동주의 심리학, 인지 심리학의 관점에서 다루어졌다면 감정 심리학은 인간의 정서를 중요시한다는 특징이 있다. '감정 심리학을 공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이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뇌 생리학에 관한 공부가 필수적이다. 뇌의 어느 부분이 감정을 관장하고 있으며, 감정이 전달되는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이러한 것들을 모르고는 감정의 정체를 밝혀낼 수 없다. 1937년 미국의 정신과 의사 하인리히 클뤼버와 폴 부시는 원숭이의 뇌에 있는 편도체를 파괴하면 이상한 행동이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두려움을 모르게 되거나 먹을 것과 못 먹을 것을 구분하지 못했다. 인간의 경우에도 편도체가 파괴되면 감정에 장애가 나타난다. 인간에게도 편도체가 파괴되는 '우르바흐-비테병'이라는 질환이 있다. 이 병에 걸리면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을 보아도 상대방의 감정을 읽지 못하게 된다. 편도체가 파괴되면 판단력이 떨어지고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문과계인 심리학에서도 실제적인 연구로 동물실험을 이용하여 뇌 안의 활동이나 반사중추의 작용을 조사하기도 하는 등 이과계의 지식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앞으로 이러한 경향은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편 감정 심리학에서는 감정이 어떠한 행동을 취하도록 만드는가, 표정은 어떤 식으로 변화하는가 등 감정 표출의 연구까지도 아울러 행하고 있다.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을 갖게 되면 갑자기 땀이 나고 심장의 박동수가 증가하며 호흡이 빨라지고 안구의 초점이 흐트러진다는 것이 실험에 의해 밝혀졌다. 이런 현상은 아무리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도 어느 정도 겉으로 드러난다고 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거짓말이 탄로 날까 봐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변화를 놓치지 않고 착안해서 측정하는 기계가 거짓말 탐지기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폴리그래프라고 한다. 고대 인도에서도 나름의 거짓말 탐지기가 있었다. 옆방 암실에 당나귀 한 마리를 준비해 놓고 만일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당나귀를 잡으면 물어뜯는다고 말해 둔다. 그러면 거짓말쟁이는 다칠까 봐 두려워서 꼬리를 잡는 시늉만 하게 된다. 이런 경우를 예상해서 미리 당나귀 꼬리에 연매를 묻혀 두었기 때문에 거짓 행동이 밝혀지는 것이다. 꼬리에 연매를 묻힌 당나귀는 지금의 방식처럼 구체적이고 세련된 방법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사람의 감정을 이용한 거짓말 탐지기였던 셈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의 감정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감정은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었는지의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음식을 먹고 배가 부르면 만족과 행복감을 느끼듯이, 생존에 플러스가 되는 자극에는 쾌감을, 생존에 마이너스가 되는 자극에는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현재 공학 분야에서는 로봇에 대한 연구가 성행하고 있는데, 로봇과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는 감정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인간에 가까운 정교한 로봇을 만들어 인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감정연구가 대단히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사람에 따라 감정의 차이가 있는 것은 개인의 감정 체험, 즉 과거의 기억이나 학습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 개에게 물려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이라면 어떤 종류가 되었든 개를 보았을 때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쉽다. 감정은 선천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미국의 심리학자이며 행동주의의 창시자인 왓슨은 '감정은 학습에 의해서 몸에 지니게 된다'는 주장을 했다. 환경 요인에 의해서 인간의 내적 감정까지도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발달에 있어서 환경 요인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극단적 환경론자라는 평가받기도 했다. 왓슨은 레이너와 함께 파블로프의 고전적 조건 형성 실험을 인간에게 적용한 실험을 했다. 그는 먼저 유아들이 큰소리에 대해서 공포감을 느낀다는 것을 관찰했다. 유아들에게 있어서 큰소리는 아무런 학습이 되지 않아도 두려움을 유발하기 때문에 무조건 자극에 해당한다. 그는 유아가 두려워하는 큰소리, 즉 무조건 자극과 다른 종류의 조건 자극을 연결하면 조건 자극이 공포를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11개월 된 유아를 대상으로 한 가지 실험했다. 왓슨은 먼저 아기에게 쥐를 보여 주었다. 그러고는 아기가 처음 보는 쥐에 대한 호기심으로 쥐를 만져보려고 할 때 그 순간 등 뒤에서 큰소리를 냈다. 이렇게 하자 아기는 깜짝 놀라서 두려움을 느끼는 반응을 보였다. 이와 같은 과정을 몇 번 되풀이하자 나중에 아기는 쥐를 보기만 해도 두려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 쥐를 만졌을 때 실제로 놀란 것은 큰소리 때문이지만 그것이 쥐를 만지는 것과 같은 순간에 일어났기 때문에 큰소리와 쥐라는 조건이 동일하게 공포를 일으키는 요인으로 연결된 것이다. 아기는 극히 한정된 범위 내에서 노여움이나 공포감을 나타내는 데 반해 성인은 매우 다양한 면에서 노여움이나 기쁨을 나타낸다. 왓슨에 의하면 이것은 성장 과정을 통해 감정의 학습을 쌓아 왔기 때문이다. 왓슨은 "나에게 아이와 특수한 환경을 마련해 준다면 어떤 전문가라도 만들어 낼 자신이 있다"는 말을 했다. 생후 11개월 된 아이를 대상으로 한 왓슨의 실험을 보면서 우리들도 기쁘거나 슬픈 여러 가지 경험을 쌓으면서 성인이 될 때까지 감정 학습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생물학적인 유전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으며, 인간의 모든 행동을 학습의 결과로 보았다. 한편 우리의 행동 가운데 잘못된 감정 학습의 결과로 인한 나쁜 습관이 있을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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