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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대화를 즐기거나 장편소설을 읽을 수 있는 것, 또한 한 번 가본 곳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기억'이라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기억이란 어떤 자극(학습)을 느끼고 이것을 머리에 새겨 두었다가, 자극이 없어진 뒤에도 그 정보를 다시 상기할 수 있는 정신 기능을 말한다. 기억의 구조는 인지심리학 분야에서 연구되는 주제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모두 써 주십시오"라는 요청을 받았다면 과연 몇 사람의 이름이나 기억해 낼 수 있을까? 가족과 친척, 친구, 저명인사, 역사상의 인물 등 그 영역은 참으로 방대할 것이다. 이름 한 가지만 해도 우리의 머릿속에는 엄청난 양의 정보가 들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정보가 들어있다고 해도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거나 자주 들어보지 않은 이름은 기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듣기는 했지만 곧 잊어버린 사람, 며칠 전까지는 기억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잊어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기억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지적 성장이나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사고하고 판단하고 학습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기억을 바탕으로 한 대뇌 기능 덕분이다. 기억은 저장되는 기간의 길고 짧음과 정보를 의식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감각기억, 단기기억, 장기기억의 3단계 기능으로 나눌 수 있다. 감각기억이란 우리의 시각과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의 오감을 통해 들어온 정보들이 순간적으로 머무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저장되는 기억은 극히 짧은 정보로서 눈으로 본 것은 1초 정도, 귀로 들은 것은 4초 정도 기억된다고 한다. 인간이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많지만 그것이 특별한 주의를 끌지 못하는 한 곧바로 사라지고 만다. 단기기억은 감각 기억 가운데 주의를 기울인 정보가 들어오는 곳이다. 보통 7개 정도의 정보가 기억되며 지속 시간도 15초 정도에 불과하다. 감각기억과 차이점이 있다면 단기기억은 기억회로에 저장된다는 점이다. 흔히 시험 칠 때 벼락치기를 하는 것은 바로 이 단기기억에 의존하는 것이다. 단기기억은 비교적 불안정하며, 두부에 외상을 입거나 의식을 잃는 등의 충격을 받게 되면 쉽게 소멸한다. 이에 비해 장기기억은 머리에 상처를 입거나 전기 충격 등을 받아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단기기억 중에서 특별하게 느껴진 것 또는 꾸준히 반복된 것들이 장기기억으로 남는데 우리가 가족과 친구들을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이 장기기억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조 치엥 박사와 연구팀은 일시적인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전환되는 메커니즘을 발견하여 지에 발표했는데 이 연구에 따르면 기억 작용이란, 뇌에서 최초의 기억이 형성될 때 세포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계속 반복하고 강화함으로써 세포와 세포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기억의 과정은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개는 아주 재미있는 일과 슬픈 일의 두 가지 기억이 가장 오랫동안 생생하게 기억된다고 한다. 이런 기억들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잘 잊어버리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 두 가지 감정 상태일 때 보다 쉽게 정보가 뇌에 입력되고, 저장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우울할 때보다 즐거울 때 기억이 더 잘 난다는 점이다. 명랑하고 유쾌한 사람이 공부하거나 시험 칠 때 유리한 것이다. 자녀가 공부 잘하기를 기대한다면 심한 꾸중으로 잔뜩 우울하게 만들 기보다 기분 좋은 상태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일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항상 학습해야 하는 아이들은 물론 성인들에게도 기억력을 향상 시키기 위해서는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즐겁게 공부하면 집중력이 높아져 학습 정보를 쉽게 입력하고 저장할 수 있게 된다. 동물실험에 의하면 아주 부정적인 경험을 많이 한 동물들은 감정 기억의 저장에 관여하는 해마가 작아진다고 한다. 베트남전 등 각종 전쟁에 참여하여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심하게 받은 사람들도 기억력 감퇴 현상을 보였다. 안 좋은 기억을 빨리 잊고 싶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불행한 경험은 해마를 적게 만들고 기억력을 떨어뜨린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경향이 있다. 그런데 최근 사람이 감정을 자제하고 무표정하게 있으면 단기 기억력이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즐겁고 우스운 장면이나 슬픈 장면 등이 나올 때 웃거나 우는 감정 표현을 억압하면 영화를 기억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렇다면 기억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책을 읽을 때 보통은 눈으로만 본다. 그러나 눈으로 보고 소리까지 내면서 읽는다면 기억은 한층 오래갈 수 있다. 또한 사람을 볼 때도 단지 이름만 아는 것보다는 이름과 얼굴, 목소리까지 함께 알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잘 잊지 않는다. 하나의 감각 기관으로 기억된 정보보다 여러 감각 기관으로 기억된 정보가 오래 기억된다. 물론 늘 즐거운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기억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친구와의 약속을 깜빡 잊어버리거나 분명히 잘 외웠다고 생각한 내용이 막상 시험에서 기억나지 않아 당황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연습을 되풀이하여 장기기억 속에 있던 것들인데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망각이란 과거의 경험이나 학습했던 것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망각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정신분석 이론에서는 억압에 의하여 망각이 진행된다고 본다. 불유쾌한 체험이나 자존심이 상한 경험은 좀처럼 잊히지 않고 무의식의 세계에 깊이 뿌리내린다는 것이다. 비단 심리학적 이론이 아니더라도 인간이 태어나면서 경험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기억을 적당히 망각함으로 해서 인간은 건강하게 생존을 유지하는 데 유리한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형태심리학에서는 기억의 흔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보다 튼튼하게 재조직되지 않으면 망각이 촉진되는 것으로 본다. 망각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또 다른 이론 중에 '간섭 이론'이 있는데 이는 과거에 얻은 정보와 그 이후에 얻은 정보가 서로 간섭하기 때문에 망각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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